이전에 청바지의 시초인 리바이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이번엔 그 청바지를 아주 맛있게 요리한 디자인성 청바지의 시작.
'청바지에 디자인을 적용했다!'라는 점에서 보면 캘빈클라인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을 수도 있는, 리바이스 보다 인기가 많았지만 영광은 고스란히 리바이스에게 돌려준 브랜드 LEE입니다.
리바이스가 서부에서 최초로 청바지를 제작하고 광부들에게 인기를 받으며 서부를 점령했다면, 중부에서 시작해 동부를 점령했던 브랜드 LEE는 1889년 헨리 데이비드 리에 의해 미국 캔자스 주에서 회사를 설립합니다.
초기에는 의류회사가 아닌 식료품 브랜드로 H.D.LEE Company를 설립했는데요, 당시 식료품 제조 공장의 직원들의 작업복이 공급이 불안정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점에 불만을 가진 리는 내가 해도 저거보다 잘하겠다며 1911년 직접 공장을 설립해 작업복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리바이스의 특허 시효는 1886년 만료되었죠.)
데님, 재킷, 오버올을 제작해 출시하였으며 실제로 그들의 불편함을 알고 제작한 리였으므로 당연하게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를 이어나가 1913년에는 운전기사가 자동차를 수리할 때 입던 작업복에서 영감을 얻어 상하의가 붙은 일체형 유니언 올즈를 출시하죠.
이는 정비공이나 철도원 농부 등 미국의 도시 노동자(라고 하기엔 좀 그런가요..?)들에게 인기몰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리바이스가 작업복, 데님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때이므로 리는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야 했고, 지금 우리가 흔하게 부르는 브랜딩을 해내면서 리바이스의 독주를 저지하기 시작합니다.
1920년 카운티 박람회에서 리는 아주 독특한 홍보 방식을 채용하는데, 인형을 제작해 실제 제품의 디테일이 그대로 담긴 소형 옷을 입히고 신제품 출시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리의 행보는 이미 캐주얼하게 정해진 것이었죠.)
그 인형의 이름은 '버디 리'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과거의 아카이빙 모델은 상당한 가격을 보여주고 있으며, 박람회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브랜드 LEE의 상징이 됩니다.
1924년에는 LEE의 대표상품으로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리바이스의 LVC와 같이 복각 버전도 만들어지는 카우보이 팬츠가 제작됩니다. (현재는 101Z라는 모델명으로 불립니다.) 당시 맞춤 사이징으로 제작되었고, 리의 행보는 리바이스와 확연하게 다르게 항해하기 시작합니다.
카우보이 팬츠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워커들을 위한 바지가 아닌 당 시대의 소위 인싸들을 위한 청바지 제작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에는 서부영화가 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는데,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가장 핫 한 트렌드였습니다. 어느 날 여름휴가를 서부로 떠난 리가 카우보이를 보고 그들을 겨냥한 아이템으로 워커들의 펑퍼짐한 느낌이 아닌 약간의 테일러드 요소를 접목한 핏과, 튀어나온 리벳이 아닌 평평한 리벳을 사용하였으며, 좌능데님을 사용해 부드러운 터치감의 디자인 청바지를 제작했습니다.
(보통 데님은 2개의 실을 사선으로 교차해 제작하는데, 그 사선의 방향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에 따라 좌능과 우능으로 구별되고 보통 좌능이 조금 더 터치감이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세탁과 건조를 반복하다 보면 리바이스의 옆선은 다리 앞쪽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리의 청바지는 뒤쪽으로 돌아가게 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리바이스를 포함한 일반적인 데님의 경우 우능을 채택하는데, 이는 대량생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디자인성 청바지는 버디 리와 함께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품질도 인정받아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납품을 하기도 합니다.
1938년에는 본인들의 아이덴티티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 'hair on hide(헤어 온 하이드)' 가죽 라벨을 제작하였고, 리바이스와 다르게 지금도 가죽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946년에는 백 포켓에 시그니처인 S스티치(LAZY S)를 제작해서 사용했는데, 사실 이전까지는 리바이스의 아큐 에이터(아치형 스티치)를 따라 했었지만, 리바이스가 이것도 특허등록을 내자 소 뿔에서 영감을 받아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낸 것이죠.
주머니 또한 리바이스와 다르게 각지지 않고 종모양으로 부드럽게 빠지는 쉐입을 가지고 있는 등, 시장에서의 차별화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리는 꾸준히 실제 워커들을 겨냥해 제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캔자스주에 큰 홍수가 나면서 공장이 큰 타격을 입었고, 전 물량을 버리게 되면서 리는 사업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1954년 완벽한 캐주얼 라인으로 돌아온 리는, 카우보이 팬츠의 이름을 라이더스 팬츠로 바꾸어 카우보이도 입고, 당시 유행하던 바이크 문화에도 편승해 바이크 라이더도 겨냥한 아이템이라는 어필을 합니다.
또한, 그래도 실용주의적인 면을 추구하던 리가 가볍게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전개하고 핏도 조금 더 슬림한 핏으로 제작하였으며 여성라인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어필은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말런 브랜도 등 할리우드를 점령하고 바이크 문화의 상징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엄청난 업적을 사람들이 리바이스로 착각하면서 리바이스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마릴린 먼로는 리바이스와 리 둘 다 좋아했다고 하네요.)
또, 리바이스보다 먼저 청자켓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제작하였고, 1950년대 제작해 계속해서 디자인을 수정한 리바이스 트러커 타입 1,2,3와는 다르게 한 번의 디자인 수정 없이 지금까지 '스톰 라이더'라는 이름(현재는 101J)으로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디자인적으로는 정말 앞서간 사람입니다.
(어쩌면 1978년 시작된 캘빈클라인 진의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1969년에는 반스 편에 설명드렸던 VF corporation에 인수되면서 대기업 등에 올라타며 전 세계로 확장되었고,
1980년대 국내에도 쌍방울이라는 기업에 국내에 고급 기성복 라인으로 런칭하였지만, 2000년대 초반 IMF로 국내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또한 1982년 청바지 워싱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패션 요소로 사용하였고, 1990년대에는 스판 기술을 접목해 완벽하게 캐주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보는 특히나 일본인들을 열광시켰고 일본에서는 일본만을 위한 캐주얼하고 감성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된 라인으로 제작되며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쩌면 아메카지의 시초였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일본인들이 가장 크게 열광했던 제임스 딘의 청바지를 미국 사정과 똑같이 리바이스로 착각하여 리바이스를 사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내의 LEE는 이러한 역사성을 가진 LEE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는데요, 국내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캐주얼 라인으로 프린팅 티셔츠나 후드티 등 인기를 얻으며 친숙해진 이 LEE는 라이센스 브랜드입니다.
2020년 비케이브에서 LEE의 라이센스 계약을 하고 2021년부터 한국에서 발매되기 시작했는데, 뭐야 슈프림 같은 사례인가? 싶겠지만, 특허싸움을 한 게 아닌 LEE가 보유하고 있는 역사성과 브랜딩이 좋아 라이센스를 구매해 우리식으로 전개되는 라인입니다.
(요즘은 이런 라이센스 브랜드가 많이 존재하죠 쉽게 말해 이름표만 사 와서 파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예일, 코닥 심지어 MLB나 캉골도 라이센스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이 라이센스 브랜드도 잘 전개만 된다면 자국 사정에 맞추어 더 이쁠 수도 앞선 브랜드를 더욱 강하게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브랜딩을 토대로 본다면 사실 인정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잘 만들어진 브랜드에 숟가락 하나 얹는 셈이니까요.(돈 주고 학력 사는 거랑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나 역사성이 브랜딩인 브랜드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안 좋은 인식을 가지는 건 어쩔 수가 없지요..
하지만 그들의 역사성을 잘 이해하고 해치지 않는 좋은 전개로 현대와 과거가 잘 어우러진 무언가를 만들어주기를, 국내의 LEE도 올바른 방향으로 좋은 항해를 하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PS) 앞선 내용과 더불어 미국 라인과 유럽 라인, 일본 라인, 한국 라인이 다 다른 제품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구매계획이 있으시다면 각 라인들을 살펴보고 입맛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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