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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 패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Polo Ralph Lauren 폴로 랄프 로렌>

by 세모킴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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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드림. 수요와 취향이 매우 다양하고 많은 기회가 있는 넓은 아메리카 땅에서 경제적인 성공과 권력, 명성을 만들어 낸다.라는 성공의 상징인데요.


그 실물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 극빈곤층에서 시작된 갱스터와 힙합 문화, 성공한 셀럽의 일상복 그리고 나아가 대통령의 취임식 복장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American Dream

 

다양한 라인들로 미국의 역사와 현재를 대변하며 패션 제국을 건설한 랄프로렌.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낸 그는 사실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미국의 상류층의 인생을 살았던 것도 아니기에 인생 자체가 아메리칸드림이었던 랄프로렌. 

 

어떻게 이민자였던 그가 미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R.L



랄프로렌은 1939년 10월 뉴욕의 중산층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화가였으며 생계를 위해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셨는데 그 예술성의 유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랄프로렌은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대한 센스나 표현이 남달랐는데요, 주먹구구식의 돈 되는대로 구매하는 게 아닌, 정말 사고 싶은 옷을 차곡차곡 돈을 모아 하나씩 구매하는 등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캘빈 클라인과 어렸을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그는 캘빈클라인에 의하면 형편은 어려웠어도 부잣집 사람 같은 느낌이 항상 났다고 합니다.

랄프는 사실 명확한 꿈이 있었는데, 디자이너가 아닌 백만장자. 부를 이루는 게 그의 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잣집 도련님처럼 행실을 다듬고, 옷차림을 하고 다니던 그는 그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랄프로렌은 사실 성이 로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 가정이었던 그는 리프쉬츠라는 성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랍비 집안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고, 형 제리 로렌은 랍비보다 백만장자에 관심이 많은 랄프 리프쉬츠에게 같이 성을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랄프로렌은 본인이 가진 아메리칸드림, 상류층의 클래식한 옷 등 여러 가지를 고렸을 때 미국식의 쉬운 성이 낫겠다고 결정하고 로렌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로렌의 전공은 디자인도 아니었으며, 시립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지만 2년 만에 학교를 관두게 되는데, 이유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사회에서도 쓸모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백만장자가 되고 싶었던 그이기에 사회생활의 경험을 쌓는 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 하에 관두면서 브룩스 브라더스라는 옷가게의 판매 보조 역할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 소비자의 취향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브룩스 브라더스에서 넥타이를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60년대의 넥타이는 얇고 단정한 디자인이 유행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로렌은, 과거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넥타이들이 많았는데 왜 현대에는 이렇게 단조로울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브룩스 브라더스에 변화를 요구하지만, 클래식의 대명사였고 변화하지 않아도 인기가 많았던 탓인지 단순한 세일즈 맨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였습니다.

 


이에 랄프로렌은 군대를 가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몇 개의 회사에 취업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되었고, 어느 한 장갑 회사에 취업했을 때, 경영진에게 자신만의 브랜드 라인을 요청합니다.


이 역시 단순한 세일즈맨의 말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희한하게도 그 회사는 로렌에게 라인을 만들어 주었고, 67년 랄프로렌은 여기서 POLO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polo sports


당시 폴로는 말을 타고 공놀이를 즐기는 스포츠였는데, 일단 말의 가격이 어마 무시하게 비쌌으며, 그런 말을 타고 여유롭게 스포츠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폴로야말로 초 상류층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또한, POLO라는 이름 자체가 국제적이며 유럽적이고 뭔가 우아한 느낌을 보유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네이밍을 하고 폴로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단순한 세일즈맨에게 내준 라인인 만큼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은 없었고, 아주 작은 라인 하나를 빼준 것이었으므로, 지금의 폴로처럼 화려한 시작은 아니었습니다.

 

R.L


하지만 로렌은 자신의 신념대로 아주 비싼 고급 원단에 화려한 스타일 그리고 폭을 넓힌 넥타이를 제작했는데, 당시 유행과는 역행하는 행보였으므로 당연하게도 사람들에게 욕을 엄청 먹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성장의 끝자락까지 올라왔던 67년 풍요로운 상황에 따라 남자들이 멋을 내며 꾸미기 시작하였고, 화려한 스타일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랄프로렌의 넥타이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합니다.
첫 해에만 50만 달러를 기록하고 처음엔 거절당하던 많은 백화점에서도 입점을 제안하지만, 모두 거절하고 폴로는 독립성을 유지하기로 합니다.

그는 여기서 폴로의 가능성을 느끼고 독립해서 독자적인 회사를 차리자 결심을 하였고, 노먼 조셉 힐튼과 형의 투자로 랄프로렌의 폴로가 시작하게 됩니다.

셔츠 정장 등 독특한 소재와 화려함으로 판매를 하며 성장을 했고, 자신이 꿈꾸며 동경했던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직접 구매하며 입었으며, 1971년에는 비버리힐즈 매장을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넓히기 시작합니다.

 

PK Shirts


1972년 드디어 전설의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24가지 색상의 폴로 PK티를 제작합니다.(폴로티라고 불리죠) 실제 폴로 선수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엄청난 브랜딩과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트의 위대한 게츠비의 시선을 사로잡는 핑크슈트를 제작하면서 그 이름은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고, 계속된 확장과 확고한 스타일로 미국 디자이너가 최초로 유럽에 진출하는 (이전까지 패션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게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재미있는 점은, 랄프로렌은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옷을 만드는 법을 전혀 몰랐지만, 전 세계를 다니면서 영감을 받은 사진을 찍고 디자인팀에게 넘겨주어 제작하게 되며, 최종 체크를 랄프로렌이 하면서 세세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을 잡아낸다고 합니다.

 

 


특히 시대적인 흐름, 빈티지에 굉장한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 7-80년대 랄프로렌의 옷을 보아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클래식하고 촌스럽지 않은 감성을 자아내는데, 이는 모두 랄프로렌 역시 빈티지 클래식에서 영감을 받아 본인의 감성을 한 줌 더해내었으며, 그 시대의 감성을 제대로 알고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전부 살려내어 반영함에 있습니다.

 

Flagship store


랄프로렌은 드림 마케팅을 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폴로를 착용하면 우아한 평일과 캐주얼한 주말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 겁니다.

 

86년에 뉴욕의 라인랜더 매장을 플래그쉽 스토어로 오픈하는데 450만 평을 2년간 제작하였고, 상류층 출신의 직원을 3개월 동안 교육해 최대 규모의 플래그쉽 스토어 정말 ’성‘을 만들어 내었고. 개장 첫 주만에 12억의 매출을 올립니다.

 

 


1990년대 또 신기한 브랜딩이 만들어지는데, 고급스러운 아이비리그 학생들을 대표하는 스타일인 랄프로렌이 동시에 극 빈곤층의 힙합 문화를 대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비리그 / 로 라이프


그 배경에는 현재까지도 활동 중인 lo-life라는 갱단이 있습니다. 1988년 브루클린 출신인 빅 빅 로 라는 그라피티와 비보이 댄서가 있었는데, 그는 클럽에서 여자들을 헌팅하다가 밑바닥이다. 저급하다 등의 폭언을 듣고는 역으로 ‘맞아 나는 로를 입어.로는 내 삶이야.’라는 말을 하는데 이 ‘로’는 낮음, 날것의 의미와 동시에 폴’로‘를 상징하게 되면서 폴로에 죽고 폴로에 산다.라는 의미가 되었고. 폴로만 입는 힙합 집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악성 하위문화 집단과 비슷하게 폴로의 매출을 올려주며 상생하기보다는, 폴로 옷을 빼앗고 훔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집단이었고, 이는 폴로를 위협하였지만, 이 때문에 힙합씬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기게 되었고, 94년에 우탱클랜이 입으면서 힙합씬의 절정을 찍게 되었습니다.

우탱클랜

 

(로 라이프는 의외로 랄프로렌의 성공을 매우 싫어했고, 폴로는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다.라고 하며 많은 범죄를 일으킨 대규모 집단이었는데, 90년대 중말 경찰들이 대규모로 투입되며 타진되는 듯했으나 아직까지 활동 중이며 랄프로렌의 이미지를 그들만의 것으로 변형해 아직도 활동하며 성장 중에 있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됩니다. 이는 따로 로라이프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polo bear


비슷한 시기 랄프로렌에게 한 직원이 곰인형을 선물했는데, 이 곰인형에 폴로 옷을 입히고 마케팅으로 사용하였으며, 캐릭터를 프린팅 하는 등 폴로 베이가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바로 힙합씬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또, 2000년대 초 중반에 명품과 SPA 브랜드 사이에 끼어서 이도 저도 못하던 랄프로렌 역시 일본의 복각 문화, 아메카지의 영향(리바이스와 LEE편을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을 받으며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었고,
주춤하고 고루할 수 있던 폴로는 과거 힙합과의 인연을 다시 끄집어내어 최근 역사적인 협업인 랄프로렌과 팔라스의 콜라보로 새로운 문화의 시작을 알리며 행진 중에 있습니다.

 

Ralph Raulen x palace



랄프로렌의 역사를 간략하다면 간략하게 소개하였는데,
그의 패션 제국에는 여러분이 아는 것 이상의 수많은 라인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polo



퍼플라벨(최애애애ㅐ애애ㅐ고가) 블랙라벨(최애애ㅐㅐ고가) RRL(고증, 복각), 폴로, 폴로 스포츠(힙합, 스트릿), 데님 앤 서플라이(캐주얼), 폴로 진스(영캐주얼), 챕스, RLX, 로렌 랄프로렌, 폴로 골프, 랄프로렌 칠드런, 홈 컬렉션, 폴로 컨트리 등등 무수히 많은 라인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브랜드는 RRL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퍼플 라벨과 컬랙션 라인의 경우 가격이 4-500 심하게는 천만 원 단위까지 있는 옷이기에 실제적으로 접근이 매우 어려움이 있습니다.

 

RRL


RRL은 랄프로렌 본인도 가장 아끼는 브랜드의 라인으로 굉장히 무겁고 묵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분위기는 매장만 보더라도 느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과거 문화들에서 영감을 받으며 워크웨어, 밀리터리, 웨스턴, 인디언 등등 빈티지 문화를 선보이고 있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그 시대의 고증이 매우 매우 잘 되어있습니다. 디테일들도 완벽하고 원단이나 부자재 하나하나 굳이 그 시대의 공장이나 지역들 등을 모두 반영하여 제작되는 브랜드로, 당시 시대상이나 역사 등을 알고 입으면 너무나도 재미있고 완벽한 패션이 될 수 있는 라인입니다.
(물론 이 또한 가격이 쉽지만은 않지요 ~)

 

랄프로렌을 입은 바이든과 멜리니아 트럼프


랄프로렌의 성공신화는 본인이 방향성만 잡고 억지로 어떤 문화를 만들려 하지 않고 팬들이 만들어 내었으며, 이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고, 힙합, 갱스터, 대통령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파고 파도 새로운 문화를 소개해주는 랄프로렌, 그중의 RRL 직접 그 분위기와 향, 촉감 모두 그냥 웹으로 보기보다 직접 경험해보는걸 적극 추천드립니다.

국내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플래그쉽 스토어가 있습니다. 무. 조. 건 방문해 보시는 걸 적극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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